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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평요람 제100권 / 후진(後晉)

 필사_치평요람 // 치평요람 제100권 / 후진(後晉) [후한(後漢) 고조(高祖) 천복(天福) 12년] [DCI]ITKC_BT_1483A_1010_010_0060_2015_038_XML DCI복사 URL복사 장언택이 평상에 걸터앉아 상유한을 접견하니, 상유한이 책망하며 말하기를, “지난해에 죄인의 가운데에서 공을 발탁하여 다시 큰 번진을 거느리게 하고 병권(兵權)을 주었는데 - 고조(高祖) 때에 조정과 재야에서 모두 장언택을 주살할 것을 청하였으므로 장언택이 경주(涇州)에서 파직되어 돌아와 숙위(宿衛)가 되었다. 거년에 상유한이 그를 발탁하여 거란을 방어하게 하면서 다시 창국절도사(彰國節度使)로 임명하여 병력을 거느리고 가 상산(常山)을 지키도록 하였다. - 어찌하여 이처럼 은혜를 저버렸는가?”라고 하니, 장언택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병사로 하여금 상유한을 지키도록 하였다. 선휘사(宣徽使) 맹승회(孟承誨)가 평소에 아첨을 잘하여 진제 석중귀에게 총애를 받았다. 이때에 이르러 진제가 그를 불러 일을 모의하려고 하니, 맹승회가 숨어서 오지 않았는데, 장언택이 그를 체포하여 죽였다. 장언택이 군사를 풀어 대규모로 약탈을 자행하니, 빈한한 백성이 그 틈을 이용해 서로 앞을 다투어 부잣집으로 들어가 사람을 살해하고 재화를 탈취하였는데, 그렇게 이틀 동안 하다가 바야흐로 멈추었다. 도성이 이로 인해 한결같이 텅텅 비어버렸다. 장언택이 거주하는 곳에 보화가 산처럼 쌓여있었는데, 그가 스스로 ‘거란에게 공로를 세웠다.’고 말하면서 주야로 술을 마시고 음악을 연주하며 즐겼다. 그가 출입할 때 수행하는 기병(騎兵)이 항상 수백 인이었고 깃발에 모두 충심으로 주군을 위한다는 의미인 ‘적심위주(赤心為主)’의 글귀를 썼으므로 보는 사람들이 비웃었다. 군사가 죄인을 사로잡아 앞에 대령하면 장언택이 무슨 범행을 하였는지 심문하지도 않고 단지 눈을 부릅뜨며 세 번째 손가락을 세우면 곧바로 끌고 나가 허리와 목을 절단하였다. - 세번째 손가락은 중지(中指)이다. 중지를 보인 것은 ...